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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에 비운의 삶을 살았던 덕혜옹주 영화 리뷰

by ssumad 2022. 3. 18.

1. 역사적배경

덕혜옹주는 대한제국 말기에 고종이 59세일때 태어난 유일한 고명딸이었습니다. 덕혜옹주는 어린시절에 극진한 총애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고종이 아기였던 덕혜옹주를 보기 위해 방에 들어갔을때 유모가 누워서 덕혜옹주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는데 유모가 고종앞에서 예를 갖추려고 하자 고종은 유모에게 예를 갖추지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천하에 대한제국 황제에게 누울수 있는 것은 유모 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이 유년시절에 덕수궁에서는 덕혜옹주는 덕수궁의 꽃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덕혜옹주가 점점 성장하자 일제는 덕혜옹주를 황적에 올려주지 않자 고종이 직접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불러서 직접 황적에 올렸다고 합니다. 일제는 덕혜옹주를 황적에 올리지 않는 이유는 대한제국의 대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국운이 점차 기울자 대한제국 황족들은 사실상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덕혜옹주는 13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고 이때 영친왕부부는 덕혜옹주와 자신의 자택에서 지내면서 통학 하는 것을 희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강제 유학 시절에 어머니 귀인 양씨가 끝내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몽유병과 조현병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혼담도 오갔는데 고종이 8세 때 황실 시종 김황지의 조카인 김장한과 약혼을 시켰으나 일본은 고종이 세상을 뜬 후 약혼을 무효화 하고 일본인과 결혼 시켜려고 했다. 결국 일본인 쇼 다케유키와 혼인을 하게됩니다. 결혼한 지 1년 후 두사람사이에서 마사에라는 딸이 태어났다. 한국식이름은 정혜이다. 하지만 딸을 낳은 후에 조현병이 재발하게 되고 점점 부부사이도 파탄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이혼을 하게 되는데 다케유키와 영친왕 이방자 세 사람의 논의 후 결정되었습니다. 정신병원 입원 후  월 1만 엔에 달하는 거액의 병원비를 영친왕이 냈다고 합니다. 당시 거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 시절 황실 재산 강제 국유화 등으로 대부분의 재산이 몰수를 당했습니다. 거의 빈털터리 상황이었습니다 1962년에 되어서야 덕혜옹주는 감장한의 형의 노력으로 3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 줄거리

구한말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던 때 덕수궁에서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고종의 뒤늦게 양귀인으로부터 낳은 고명딸 덕혜옹주였습니다. 고종은 그 아이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치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더불어 덕수궁 내 처소인 함녕전으로 덕혜옹주를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덕혜옹주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고종황제에게 한 줄기 삶의 낙이 되었습니다. 덕혜옹주는 잠시나마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19년 고종황제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덕혜옹주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제는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녀를 결국 강제로 일본에 유학을 보냈고 1931년에 쇼 다케유키와의 정략 결혼까지 성사시킵니다. 덕혜옹주는 당시 전국민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사람으로 그녀가 쇼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일보는 결혼식 사진 속 신랑의 얼굴을 삭제하고 지면에 실어 민심을 대변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 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남편과 합의 이혼했으며 결국 딸 정혜를 잃고 맙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왕조가 부활하는 것을 꺼렸던 이승만 정부에 막혀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가 다시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것은 1962년이어습니다. 이후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1989년 생을 마갑하게 됩니다. 

 

3. 총평

덕혜옹주라는 영화 작품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던 마지막 황녀를 표현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을 바탕으로 픽션이 더해져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스토리에 힘을 더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은 물록 엄청난 지위에 있던 황족도 굴욕을 받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또 영화를 통해서 덕혜옹주의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 아무런 힘도 없었던 그녀가 황실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도구가 되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는 걸보고는 슬픈감정을 느꼈습니다. 결국 정치적으로 휘둘려 광복 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귀국하지만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다시한번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암울한 시대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덕혜옹주는 암울한 시대를 겪으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 여인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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